“떳떳하게 말하자. 빚 못 갚겠다!”

만화 <사채꾼 우시지마>(마나베 쇼헤이 지음, 대원씨아이 펴냄)를 보면 한국의 오늘이 보인다.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은 빚을 진다. 그 빚을 갚지 못하자 다른 빚을 늘려 돌려막기에 나선다. 어느 순간, 빚은 감당 못할 만큼 늘어나 채무자의 목을 죈다. 빚은, 신체를 팔아서라도 갚아야 할 절대 신념이 되어 사회를 좀먹는다.

연소득 4000만 원인 홍길동 씨가 3000만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저축은행에 개설했다고 하자. 홍 씨는 갑자기 실직자가 되어 원리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게 되었다. 이 경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? 열에 아홉은 홍 씨가 채무자로서 책임을 이행하지 못했음을 비난할 것이다.

주인공을 바꿔보자. 서양증권은 서양시멘트가 발행하는 회사채의 일종인 후순위채권 상품을 전우치 씨에게 1억 원에 판매했다. 그런데 서양시멘트가 법원에 기업 회생 신청을 하는 바람에 1억 원 가운데 상당액을 손해보게 되었다. 이 경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? 적잖은 이는 위험 상품에 투자한 전우치 씨가 그 위험을 지는 게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다.

홍 씨가 빌린 3000만 원과 서양시멘트가 발행한 후순위채권 모두 빚이다. 여기서 채무자는 홍 씨와 서양시멘트다. 그러나 언론은 두 번째 사례에서도 “위험을 지기로 한 전우치의 책임”을 말한다.

첫 번째 사례에서는 돈을 빌려줄 때 홍 씨의 실직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저축은행을 비난하지 않는다. 두 번째 사례에서는 돈을 빌린 서양시멘트나, “서양시멘트가 돈이 부족해 여러분에게 돈을 빌리는데, 회사가 부도가 날 경우 가장 나중에 갚아드릴 것”이라는 설명을 하지 않은 서양증권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.

이 두 가지 사례는 새로 나온 책 <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>(제윤경 지음, 책담 펴냄)에 소개되는 이야기다. 빚의 끔찍한 수렁에 빠져 재기의 길을 찾지 못하는 이들의 눈물겨운 사연이 가득하다. 이 책은 금융 회사의 도덕적 해이에 지나치게 둔감하고, 채무자를 가혹하게 수탈하는 약탈 자본의 민낯을 드러내, 새로운 시각으로 금융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.

주장의 핵심은 제목 그대로다.

“당신이 진 끔찍한 빚은 다 갚지 않아도 된다.”

아직 이런 사회는 오지 않았다. 이 책은 이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실천 운동을 소개한다. 바로 채권 소각 운동이다. 이 책의 발행 시점과 맞물려 실제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공식 운동 단체가 출범했다.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(KDI) 교수가 명예 은행장이 된 ‘주빌리 은행’이 그것이다.

책의 저자이자 주빌리 은행 대표를 맡은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를 지난 8월 28일 서울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. 주빌리 은행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독자는 아래 인터뷰 내용을 보시길.